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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동화는 끝났다.
    영화 雜談 2006. 4. 13. 13:18


    Crash (2005)
    감독, 각본: 폴 해기스(Paul Haggis)
    2006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아, 미국.  듣기만 해도 가슴이 뛰었던 그 나라.
    그 나라엔 초콜릿이 산처럼 쌓여있고, 코카콜라가 강물처럼 흐르고 있으며, 석유가 화산처럼 분출하고 있었다.
    그 나라 사람들에겐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가 있고 언제나 귀를 즐겁게 해 주는 팝송이 있고 마음 내키면 아무데서나 뽀뽀할 수 있다 했다.
    오죽하면 포르노까지 세계 최고이지 않은가.

    그랬었다.
    그렇게 그 나라는 낙원이었다.
    그 나라에선 흑인, 백인, 아시아인, 중남미인, 러시아인 할 것 없이 다 어울려 잘 산다 했다.
    차별 없이 같은 기회가 주어지는 Land of Opportunity라 했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태어난 아사 직전의 어느 소녀는 미국에 와서 엄청난 돈과 명성을 얻었다.
    러시아 벽촌에서 살던 어느 아이도 미국에 와서 주체할 수 없이 많은 돈과 명성을 얻었다.
    아시아에서 온 어느 소년도 미국에서 큰 돈을 벌었고 엄청 화려한 생활을 한단다.



    그런데 그 동화가 끝나버렸다.
    젖과 꿀이 끊이지 않고 흐를 것 같던 그 땅이 이젠 더 이상 낙원이 아닌 것이다.
    그 곳에 사는 행복한 사람들도 실은 가난한 후진국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한 끼 밥을 벌기 위해 고달피 땀을 빼야 하고 하루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다른 이들과 부대껴야만 하는 것이다.
    남들보다 조금 부유한 이들도 남들보다 좀 더 좋은 직업을 가진 이들도 자기들끼리 고고하고 우아하게 살아지질 않는다.
    글쎄, 저 위 아주 까마득한 곳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소수들의 삶은 어떨지 몰라도.

    그런데 도대체 왜 언제부터 자유와 기회의 땅이라던 미국이 이렇게 돼 버렸을까.
    그에 대한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거기도 사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다.
    다만 화려한 앞 모습 뒤에 애초부터 함께 있던 어두운 부분이 가리워지기도 하고 또 보는 이들이 애써 보려 하지도 않았기에 그 곳이 마치 낙원처럼 또 동화의 나라처럼 보였던 것뿐이다.



    그 나라와 그리고 거기에서 유복하게 사는 이들이 세상에 없는 걸 만들어 내어 그걸 가지고 부와 행복을 누렸던 게 아니었던 것이다.
    다른 이들의 것을 혹은 스스로 제공케 하고 혹은 뺏어오고 혹은 더 많이 가지고 하여 그렇게 멋져 보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멋져 보이는 꺼풀을 걷어내고 들여다보니 거기도 별 다를 것 없이 사람끼리 부대끼고 부딪치고 그러면서 살아가야 하는 그냥 그런 세상인 것이다.

    오랫동안 가리워져 보이지 않던 꺼풀 속의 그 모습을 이제 그들이 스스로 내보이고 있다.
    동화 속의 나라는 저 멀리 별 나라에 원래부터 있었다고 애써 믿고 살던 그들이 더는 그러지 못하게 된 것이다.
    동화 속의 나라는 저 혼자 따로 존재할 수 없으며 그걸 떠받치는 다른 쪽이 존재하여야 한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동화 속의 나라에서는 각 개인의 범위를 침범치 않는 것이 미덕이었다.
    내가 잘 나서 나를 챙기면 되고 다른 이들은 스스로 자기를 챙기면 된다고, 그러다 보면 모든 게 다 잘 되는 거라 하였다.
    그런데 서로 다 잘 나서 각자의 몫을 잘 챙긴다면 각자 별 차이 없이 똑같이 살게 되는 거 아닌가.
    결국 내가 잘 나서 더 많이 챙기고 더 행복한 이면에는 잘 나지 못해서 덜 가져가고 그래서 불행한 사람이 있기 마련인 것을.

    내가 남 보다 더 많은 걸 가져가려면 다른 이들과 부대껴야 하고 부딪혀야 한다.
    우아하고 품위 있는 선자(善者)에게 남이 스스로 부(富)를 가져다 주는 게 아니다.
    우악스럽거나 교활하게 부나 명성을 추구하는 이에게 남이 스스로 존경과 사랑을 보내는 게 아니다.
    내가 원하는 걸 가지려면 저 멀리 구름 위에 있으면 안 되고 원하는 게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건 남들도 원하기에 그걸 더 가지려면 서로 부딪혀야 하고 때에 따라서는 적당히 나누기도 해야 한다.
    다 가질 수는 없다.
    어느 하나를 가지려면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남에게 뭔가 주어야 한다.
    한 동네에서 왕자인 사람이 다른 동네에서는 조직폭력배 수괴쯤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걸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게 자본주의다.
    그게 자본주의 미국에서 사는 모습이다.


    이 영화는 말한다.
    이제 미국에서 더 이상 해피엔딩은 없노라고.
    있다고 해도 그건 해피엔딩이라기 보단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을 사건들일 뿐이라고.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매기(힐러리 스왕크 분)의 아메리칸 드림이 결국은 싸늘한 현실에 부딪혔던 것처럼.
    매기의 해피엔딩이란 것이 그저 비참하게 살아남지 않기로 마무리 되듯이.

    이 영화는 또 말한다.
    미국과 미국인은 동화가 아닌 현실에서 살고 있다고.
    현실에서 사람들은 서로 부대끼며 살고 있는 거라고.
    나의 모습이 한 쪽에서는 건실한 생활인으로 보일지라도 다른 쪽에선 날건달로 보일 수 있는 거라고.

    그럼 이 영화는 그런 얘기를 뭐 하러 할까.
    영화 <21그램>에서 크리스티나(나오미 왓츠 분)의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Life goes on).”
    이 영화는 바로 이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삶은 계속되니까 현실을 인정하고 나와 남의 한계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더 이상 살지 않으려고 한다면야 부대끼고 부딪힐 필요가 없겠지만,
    살아가려면 그래서 좀 더 여유 있고 행복한 삶을 꿈꾸려면 남들과 부딪혀야만 하는 짜증나는 현실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그런 현실을 즐기진 못할지라도 그런 현실이 없다고 외면하며 그 현실이 마치 부조리나 죄악인 듯이 위선 떨지는 말자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현실을 꼼짝 없이 받아들이며 오늘 하루도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겐 이 영화의 메시지가 그저 배부른 이들의 멍멍거림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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