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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ood Luck, America
    영화 雜談 2006. 3. 28. 00:41

    최근 국내 개봉을 하나 싶더니 어느새 서둘러 간판을 내린 영화,
    "Good Night, And Good Luck"

    요번 아카데미 시상식에 6개 부문이나 후보로 오르고 평론가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은 이 영화,
    죠지 클루니가 감독, 각본에 직접 출연까지 한 이 영화,
    흑백의 차분한 영상미에 다이안 리브즈(Dianne Reeves)의 멋드러진 Jazz가 찰랑대는 이 영화,

    이런 영화가 도대체 왜 이리도 빨리 간판을 내리는 것일까?
    어찌하여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 중 많은 이들이 마치 "잠 안자고 영화보기" 이벤트에 참가한지 24시간이 지난 사람들 처럼 영화 중간 쯤에서부터 마냥 축 늘어져 입가에 침을 고이게 되는 걸까?

    그 이유를 논하기 전에 먼저 이 영화가 다루는 인물들에 대해 잠깐 언급해보자.

    먼저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에드워드 머로(EDWARD R. MURROW).

    1908년에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출생하여 1965년 뉴욕에서 숨을 거뒀다.
    영화에 나오는 대로 미국 언론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으며 CBS 본사 로비에는 그의 동상이 놓여져있다 한다.
    라디오 프로그램 "Hear It Now"를 TV로 옮긴 "See It Now"를 진행하며 소위 "PD 저널리즘"의 전형을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1961년에는 케네디 대통령의 지명으로 미국 해외공보처(USIA) 처장으로 임명되어 1964년까지 재직하였다.


    * USIA는 1999년에 미 국무부에 편입되었는데, VOA 방송 담당부서이고 미국 F 비자 발급기준을 정하는 부서이기도 했다.

    그리고 에드워드 머로와 함께 "See It Now"를 제작했던 프레드 프렌들리(Fred W. Friendly).
    CBS 뉴스국장을 지냈고 미국 내 공영방송인 PBS 설립에 중대한 역할을 한다.
    1966년에 그는 CBS가 미국의 베트남 개입과 관련한 상원 청문회 대신에 "내 사랑 루시"를 방영하자 이에 항의하여 회사를 그만 둔다.

    또 한 사람, 그의 동료로 나오는 뉴스 앵커 돈 할란벡(Don Hollenbeck).

    2차 세계 대전 시 이탈리아 전선 종군 방송으로 명성을 얻었던 그는,
    매카시 상원의원의 잘못을 지적하는 에드워드 머로의 방송 직후에 뉴스를 진행하면서 공개적으로 머로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로 인해 할란벡은 잭 오브라이언(Jack O'brian) 등 매카시를 지지하는 우익 칼럼니스트들에 의해 공개적이고 집중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 비난이 계속되던 와중에 그는 1954년 자신의 집에서 자살을 한다.



    * 영화를 보던 도중에 나는 잭 오브라이언을 자꾸 빌 오라일리(Bill O'riley)로 듣게 되었다.  왜 있잖은가, 부시를 열렬히 지지하여 인기를 얻었으나 최근에 터진 성추행 건으로 잠시 꽁지를 내린 미국의 극우 TV 토크쇼 진행자 말이다. ^^

    이 영화는 위 인물들이 1950년대에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사실을 왜곡/과장하여 무고한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서 미국 사회를 극도의 우경화로 몰고갔던, 후에 매카시즘이라 불리는 狂風을 주도했던 죠셉 매카시 상원의원을 TV 프로그램을 통해 비판하면서 벌어졌던 에피소드를 허풍이나 과장 없이 차분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이 영화가 재미없거나 따분할 이유가 하나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실상 우리 관객들의 반응은 영 심드렁 할 따름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가 2006년의 대한민국 관객들에게는 어떤 공감이나 분노 또는 긴장감을 전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영화가 80년대나 90년대의 우리 관객들에게 보여졌다면 아마 무척이나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들었을 것이고,
    "우리에게도 저런 언론인이 필요하다", "미국식 언론자유의 개가" 등의 평과 함께 언론인이라면 꼭 보아야 할 영화의 리스트에 올라가기도 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개봉이 안 됐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떤가.
    솔직히 하고 싶은 얘기 다 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사상과 관련한, 특히 왼쪽으로의 신념에 대해서는 금기시 되고 있지만,
    그 정도 말고는 언론이 못 할 말, 안 할 말이 없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 젊은 관객들에게 매카시즘이란게 뭔 의미를 가지겠는가.
    자신의 생각과 신념 때문에 인권이 침해되고 인신이 구속되는 게 실감이 가는가.
    자신의 생각과 신념이 단지 일부 기득권 층의 생각과 다른다는 것 때문에 공권력에 의해 위해를 당하고 그것이 당연시 되는 게 공감이 되는가.
    그들 대부분에게 남민전, 인혁당은 무척 까다로운 퀴즈 문제 정도이지나 않을까.

    지금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우리의 젊은이들이 뭔가 잘못됐다는 말을 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젊은이들이 불과 20년 쯤 전에 우리 사회에서 그런 일들이 일상처럼 반복되었다는 걸 모르고 사는 게 참으로 다행스러운게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반전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대한민국과 미국의 사회 상황에 대한 반전말이다.

    80년대와 90년대의 초반에 우리들은 이런 얘기를 했었다.
    미국은 그나마 기본적인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미국의 언론인들은 하고자 하는 말은 하고야 마는 언론인의 자세를 가지고 있다,
    우리도 이러한 언론의 자유, 언론인의 자세를 원한다,
    라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
    죠지 클루니는 현재 미국 사회에 당면한 문제와 이에 대응하는 언론의 자세에 대해 영화를 만들어 자국민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애쓰고 있다.


    그리고 우리 관객들은 그 영화를 보며 좀체로 감정이입이 되질 않아 애써 졸음을 참으려 애쓰다가 기어이 잠이 들거나 끝까지 보더라도 누가 이 영화를 보자 그랬는지 일행과 다투기 일쑤다.

    그러고 보니 요즘 영화의 생명은 반전이라는데, 이 영화 나름대로 반전을 만들어내긴 한 것 같다.

    하지만 또 모를 일이다.  우리 사회도 언젠가 다시 이 영화가 경고하는 상황으로 빠져들어가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어쨌든 지금은, 선량한 미국민들께 전하노니,
    "Good Luck, A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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