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런지 몰라도 불안하기만 하다고들 하십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선 신문기사 한 꼭지를 보시죠.
“우리 국민 이념성향의 분포를 보면 1년 전에 비해 ‘보수’(11∼50점)가 32.5%에서 20.5%로 줄어든 반면, ‘중도’(-10∼10점)는 59.2%에서 67.1%로, ‘진보’(-11∼-50점)도 8.3%에서 12.4%로 약간씩 증가한 추세를 보였다.” (조선일보. 2003년 5월 1일) http://social.chonbuk.ac.kr/soc/dhseol/activity/in2003_11.html
예, 조선일보 기사입니다. 그들의 수치를 보면 다른 쪽은 안 봐도 될 것 같아서 인용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정의한 ‘보수’ ‘중도’ ‘진보’에 대해서는 알아서들 해석하시고요. 어쨌든 1 년 전의 이 기사와 탄핵안 가결 이후 최근까지 숨가쁘게 발표되었던 정당지지도와 비교해 보면 희한하게도 거의 변화가 없다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밍노의 지지율과 진보성향 분포, 먼나라의 것과 보수성향 분포가 거의 같습니다. 그리고 탄핵안 가결 반대율이 중도성향 분포와 거의 일치합니다. 그렇다고 중도성향 분포를 열무의 지지도로 등치 시킬 수는 없다고 봅니다. 일단 약 12% 가량의 중도는 선택의 순간에 무게중심을 보수로, 약 4%의 진보는 중도로 중심을 옮길 가능성이 있음을 위의 수치에서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중도성향은 60% 정도로 보여지며 17대 의석수로 보면 180석이 되겠네요. 공공연히 얘기되던 200석 이상 석권이라든지, 궤멸이라든지 하는 말들은 사실 거의 불가능했던 겁니다.
수치대로라면 진보성향이 24석 보수성향이 97석을 가져가게 되며, 탄핵에 반대하고 딴민년을 싫어하는 유권자들이 178석을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보면 그대로 가도 별 문제가 없는 듯 하지만 문제는 아직까지는 미약한 진보 쪽의 득표력과 지역 소선거구제도, 그리고 중도성향이 가지는 부동성 입니다. 중도는 말 그대로 무게중심이 정해져 있지 않기에 178석이 어디로 갈지 누구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탄핵 사건 직후 말하자면 겁에 질려 말도 제대로 못하던 소위 ‘보수’라는 분들이 이제는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내 주변에 적어도 열명 중 세 명 정도는 먼나라를 지지 내지 옹호하는 유권자가 눈에 띄게 되는 겁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의 원인은 여기에서 찾아질 겁니다.
그러면 뭘 어찌해야 할까를 고민해보니 현 시점에서 보수 쪽의 표를 가져 온다거나 또는 진보 쪽의 표를 어떻게 공유할 것이냐는 문제는 별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서로 있는 표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매우 중요한 세가지 키워드는 “Fact”, “감성”, “자유의지”라 생각했습니다.
1) “Fact”로 접근한다
이제까지의 선거역사를 통틀어 ‘정책선거’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당분간 그럴 것입니다. 항상 그랬듯이 각 정당의 공약집은 조금 과장되게 얘기하면 상호복사본입니다.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정책이 아니라 ‘Negative 전략’이 언제 어디서나 먹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 먼나라의 전공분야이자 주특기가 ‘Negative 전략’입니다. 그러면서 상대방에 대해서는 ‘Negative’ 쓰지 말라고 지랄발광(달리 표현할 말이 없음)을 떱니다. 근데 이게 먹힙니다. 지지자들에게는 이보다 더 확실한 처방이 없죠. 그런데 문제는 이 전략은 항상 자기 지지자들만 굳힐 뿐이지 지지 세를 확대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나라가 두 번 연속 큰 싸움에 실패한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이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지금 그들에게 당면과제는 승리가 아닙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지지자들을 결집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그네꼬라는 결집 점을 제시한 거고 유인 책으로 ‘Negative’를 집요하게 사용하는 겁니다.
그런데 소위 ‘중도’에게는 이게 안 먹힙니다. 게다가 스스로 중도를 표방한다고 하는 정당이 이걸 쓰면 거의 자방 수준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먼나라의 망언은 가십거리로 넘어가지만 열무의 시답잖은 발언 한마디도 집중 공략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
방법은 “Fact”를 활용하는 겁니다. “Fact” 자체가 그들을 향한 “Negative”가 됩니다. 딴지스 여러분. 저 같으면 열무의장이나 기타 인사들의 발언, 또는 불확실한 정체성에 대한 말이나 의견이 나오면 맞대응 안 하렵니다. 무시하거나 그저 실수라는 걸 인정한 뒤에 그냥 넌지시 이 말을 하렵니다.
“난 말이다, 딴 건 몰라도 ‘차떼기’한 놈들은 무지무지 싫다.”
“돈 쳐 먹고 감옥 간 놈을 탈옥 시키는 놈들이 느무느무 싫다.”
“폭력을 동원해 지들 멋대로 일을 저지른 놈들이 진짜 진짜 싫다.”
2) “감성”으로 다가간다
고약한 향수 냄새가 풀풀 납니다. 감성에 호소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도 언제 어디서나 먹힙니다. 이제까지의 선거역사는 ‘이미지선거’였습니다. 상품을 일정기간 직접 사용해 보기 이전에는 선택기준이 ‘이미지’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동정심을 유발하고 향수를 자극하는 몇 번의 몸짓은 적어도 단기전에서는 백 마디의 논리 정연한 말이나 열 권의 책보다 효과가 강합니다. 지역감정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남이가”는 이성을 훌쩍 뛰어넘는 가치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사실 “감성”에 제일 약한 게 ‘중도’입니다.
딴지스 여러분. 중죄인이 자기변명을 주절거리며 눈물지을 때 누군가 다가와 죄상을 따지며 사정 없이 뺨을 후려갈기면 보통 “뺨까지 때릴 게 뭐 있노. 알고 보면 그 놈도 불쌍하던데.”라고 하는 게 우리입니다. 저 같으면 동정심이나 향수, 그리고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말이나 글에 대해 즉시 논리를 내 세워 대응하지 않으렵니다. 그냥 냅두렵니다. 그리고 몇 마디 하렵니다.
“내 자식에게 이런 나라를 그대로 물려줄 수는 없다.”
“50년을 해 먹었으면 이제 바꿀 때도 됐다, 불판을 갈자.”
“한, 두 번 속은 것도 아니고 이제는 새로운 사람들을 선택하련다.”
“협박으로 삥 뜯고 서슴없이 폭력을 쓰는 놈들을 또 뽑아주기가 싫다.”
3) “자유의지”에 맡기자
무뇌충도 누가 강제로 뭘 시키면 반발합니다. 하물며 나름대로의 주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역사의 대의와 그에 대응하는 우리의 사명이 아무리 크고 중요하다 해도 그걸 자꾸 강요하면 역효과만 납니다. 요새 한참 논란이 되는 남쪽 지방도 마찬가지 입니다. 자꾸 그분들에게 뭐라고 하시면 뜻이 좋든 어떻든 듣는 사람은 무지 기분 나쁩니다. 여러분의 선택만큼이나 그 분들의 선택도 똑 같이 소중합니다. 그 분들의 선택을 억지로 꿰 맞추려 들지 맙시다. 남쪽 지방이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말입니다.
312가 터졌을 때 광화문을 중심으로 이백만이 모이리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믿음을 가져봅시다.
딴지스 여러분. 저 같으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 놈이 그 놈이라는 둥, 정치에는 희망이 없다는 둥, 결국 지역에 따라 투표할 것이라는 둥 떠들며 혐오감을 조장할 때 조목조목 따지고 들지 않으렵니다. 대신 몇 마디 하렵니다.
“당신의 선택을 강요하려 하지 마세요.”
“어디라도 그리고 누구라도 좋습니다. 투표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