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그대 혁명을 꿈꾸었던가 ...
    길다 2003. 8. 7. 14:45











    1. 개자식들의 마을, 개만도 못한 놈들

    어느 조용한 산골에 작은 마을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깥 세상에서는 한창 자본주의사회의 건설을 위한 터 다지기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만 마을 사람들은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저 하루하루 먹고 살아가는 일에만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 곳에는 몰락하는 봉건영주(封建領主)의 모습으로 늙고 병들어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눈이 멀었지만 여전히 마을을 장악하고 있는 “잭”이 살고 있었고, 쇠락한 귀족처럼 모아 논 재산으로 가무(歌舞)나 즐기며 살아가면서 자칭 의사라고는 하지만 정작 제 몸에 자라는 암세포 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톰(Tom Edison Sr.)”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웃에는 작은 상점을 운영하는 “마”, 가내수공업을 하는 “헨슨”씨네 가족, 사과 농업을 하는 “척”, 장돌뱅이 “벤” 등 여러 쁘띠 부르주아(Petit Bourgeois, 불어)와 농민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었고 지식에 대한 욕구가 강하고 이를 과시하기 좋아하지만 정작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베라”와 하는 일 없이 예배당을 관리하며 생활하는 “마사”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아버지 “톰”의 집에 얹혀살고 있는 아들 “톰”. 그는 비록 룸펜(Lumpen, 독어)이긴 했지만 스스로 지식인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하루를 연명하는데 급급한 마을 사람들을 계몽하여 자신이 그들 보다 우수한 인간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 마을 사람들을 소집하여 보다 나은 공동체 건설을 위한 각자의 역할에 대해 역설을 하곤 했는데, 마을 사람들은 실속 없이 말만 앞서는 아들 “톰”에게 차츰 싫증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챈 아들 “톰”은 어떡하면 사람들에게 “실례(實例)”를 보여줄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본주의사회 건설이 한창 진행 중이던 바깥 세상에서 뭔가 문제가 발생했는지 난데 없는 총성이 들려와 “톰”의 귓가에 울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톰”은 총성에 쫓겨 얼떨결에 마을로 찾아 든 “그레이스”와 운명적 조우를 하고야 맙니다. 그때 곤궁하기 이를 데 없던 “그레이스”의 처지를 눈치 챈 “톰”의 머리 속에 퍼뜩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겠다고 제안을 하였고 대신 그녀가 마을 사람들에게 일정한 봉사를 해 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레이스”가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자 “톰”은 기뻤습니다. 쫓기는 사람에게 은신처를 제공하여 스스로 얼마나 휴머니즘이 넘치는 인간인지를 확인하는 한편 그녀를 통해 그간 고민 해오던 “실례”를 실험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톰”에게서 “그레이스”를 소개 받은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받아 들인다는 것이 못내 찜찜하기만 했었지만, 일단 적응기간을 거쳐보기로 합의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먹고 사는 일을 걱정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던 “그레이스”가 마을 사람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톰”과 “그레이스”는 일단 마을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지만 그래도 누군가 해 준다면 나쁘지는 않은 일들을 해보기로 합니다.

    애들을 가르치고, 생활환경을 가꾸고, 장애우를 돌보고, 몸이 아픈 사람을 보살피고, 가끔은 일손도 돕고 하는 그런 말입니다. 요새 말로 교육, 복지, 사회봉사 등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그런 일들 말입니다.

    그리고 서로 약속한 적응기간이 지났을 때엔 마을 사람들 모두가 착한 마음씨와 성실한 자세, 그리고 얼굴도 예쁜 “그레이스”에게 모두 반하게 되었고 기꺼이 그녀를 마을의 일원으로 맞아주었습니다. 이렇게 변화하는 마을 사람들을 목격하게 된 “톰”과 “그레이스”는 정말로 기뻤습니다. 그들의 노력으로 마을 사람들을 계몽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마을이 보다 나은 공동체로 되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에, 여기서부터는 영화의 결말에 대한 암시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오니 되돌아가실 분은 되돌아가시고 그러지 않으실 분들은 계속 진행하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레이스”가 서서히 마을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을 때 바깥 세상에서 자꾸 불청객이 찾아 들었습니다. 그 불청객은 마을 사람들에게 “그레이스”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 그녀를 용인하는 것에 따른 대가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자꾸만 주지시키곤 하였습니다. 그때마다 “그레이스”는 마을 사람들을 믿었습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그들을 위해 더욱 열심히 봉사한다면 그들도 그만큼 자신에게 보답해 줄 것이라 생각하였기에 이전보다 더 많이 더 성실하게 봉사하였습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생각은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은연중에 “그레이스”로부터 위험부담에 따른 더 많은 대가를 받아내고 싶어졌고 마을의 일원이 아닌 종으로 부리고 싶어지고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그레이스”에게 더러운 손길을 뻗친 사람은 바로 농부 “척”이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이후 마을 사람들은 차례로 그녀를 냉대하고 능멸하기 시작했습니다. 돌변한 마을 사람들로 인해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치고만 “그레이스”는 마을을 떠나기로 결심했지만 그들은 그마저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생활을 연명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지만 그래도 누군가 해 준다면 나쁘지는 않은 일들을 해 줄 사람이 없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고 이제 그 일은 누군가는 해 주어야만 할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더 이상 그런 생활을 견뎌내지 못하고 몰래 마을을 빠져나가던 “그레이스”는 협력자의 배신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붙잡혔고 기어코 목에 쇠사슬까지 채워지고야 말게 됩니다. 그때 “그레이스”는 너무나 커다란 배신감과 절망감에 온 몸을 떨어야 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인간에 대한 믿음까지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외롭고 힘들고 처참한 몰골로 희롱 당하면서도 그녀는 마을 사람들이 언젠가는 그녀의 진심을 알아주고 함께 인간으로 살아가게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런 그녀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아직 깨우치질 못하고 이성이 제대로 서질 않아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라며 스스로 위안을 삼고 있었습니다. 개가 무례하게 행동했다고 해서 이에 대해 교육받은 성인을 꾸짖듯이 할 수는 없다고 말입니다.

    이런 “그레이스”의 처지를 보며 당황한 것은 “톰”이었습니다. 그녀가 능멸 당하는 모습은 자기 머리 속의 세상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고 결국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실례”가 돼버리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톰”은 “그레이스”에게 마지막으로 마을 사람들에 대한 직접 설득을 시도해 줄 것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그 시도마저 실패로 끝나자 “톰”은 절망하고 도리어 자신을 “그레이스”에게 기대려 합니다.

    하지만 그때 “그레이스”는 분명히 말합니다. 그녀는 “톰”의 소유물이 아니며 절망감을 달래주는 도구도 아님을. 그러면서 인간의 관계는 서로 대등한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비로소 의미가 있다고 설득하는 “그레이스”에게서 “톰”은 난데 없는 분노를 느끼고 맙니다. 그 동안 그가 각별히 보살펴 주었던 “대상”이라고 여겼던 그녀로부터 도리어 같은 인간으로서의 존중과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야 하지 않겠느냐는 충고까지 받게 되자 “톰”은 아예 커다란 위협까지 받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톰”은 이제 “그레이스”와의 관계를 정리할 때라고 결심합니다. 그녀와의 관계를 계속하다간 오히려 자신의 한계와 무기력만이 노출되어 동네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로부터 무시당하는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판단을 한 것입니다. 일단 판단이 내려지자 “톰”은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즉시 동네 사람들을 선동하여 “그레이스”가 잠든 사이 몰래 그녀를 팔아 넘기고야 맙니다.

    지친 몸과 마음을 쉬려 잠시 눈을 붙이고 있다가 난데없이 들이닥친 검은 양복의 사내들에게 둘러싸이게 된 “그레이스”는 자신이 팔아 넘겨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순간 그녀는 자신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야 말았다는 허탈감에 사로잡혔지만 그렇다고 그걸 그냥 인정하면 자신이 더욱 비참해질 것 같아 애써 마을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정을 끌어내려 해봤습니다. 하지만 이내 “그레이스”는 마을 주민들이 강아지가 아닌 사람이라는 것을 떠올리고는 억제할 수 없는 배신감과 분노에 몸을 떱니다. 한 인간을 이용해먹을 대로 다 이용해먹고는 결국에는 팔아 넘기고야 마는 놈들. 사람에 대한 기본 예의조차 지키지 않는 개만도 못한 개자식마을 놈들.


    2. 어떻게 할 것인가?

    공주님은 아마 혁명을 꿈꾸었는지도 모릅니다. 총과 칼이 난무하고 피가 튀는 그런 혁명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금새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예쁜 꿈 말입니다. 하지만 꿈은 깨져버렸습니다. 그것도 눈을 뜨면 잊혀지는 그런 꿈이 아니라 처참하고 더러운 현실은 그대로 남긴 채 말이죠.

    어떡해야 할까요, 저들을. 용서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을 저지른 저들을. 그래도 용서하시렵니까. 아니면 사회로부터 강제로 격리시키시렵니까, 극단의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저들을 용서하고 검은 양복의 사내들에게 그냥 잡혀가면 어떻게 될까요. 초췌한 모습으로 비참하게 끌려가는 “그레이스”의 모습을 통해 저들은 저들의 잘못을 언젠가는 깨닫고 인간과 인간이 서로를 존중하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려고 노력하게 될까요.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혹시 팔아 넘긴 보상금을 서로 더 많이 챙기겠다고 싸우지나 않을지. 같은 인간임에도 자기보다 약하다고 판단되면 보살펴주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핍박하여 자기의 이익만 챙기는 이들이라면 처참한 “그레이스”의 모습을 보며 오히려 역시 힘이 있고 봐야 한다는 생각을 더 키우게 되지 않을까요.

    요새 주변에서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라는 얘기를 많이 듣지 않으십니까. 깨끗하고 정직한 사람이 지도자의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늘 말하다가도 약간의 혼란이라도 보일라치면 금새 “어떤 놈들은 패야 말을 듣는다”,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약간의 독재도 불가피하다” 등의 말씀을 많이 하시기도 하고 말이죠. 아시다시피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에게는 그 영향력을 틈타 이익을 챙기려는 저 같은 보통 사람들이 몰려들기 마련이고, 또 그들로 인해 카리스마가 계속 유지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그 강력한 카리스마 아래의 그늘 속은 썩어가고 그 썩는 냄새가 너무 지독하여 차라리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 같은 사람을 우리가 원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것도 아닌가 봅니다.

    자, 생각을 바꿔 저들을 어떤 식으로든 응징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인간은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고 믿으면서도 그들을 가르치고 “실례”를 보여서 짧은 시간에 확 바꿀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혹시 “교만(驕慢)”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결국 그 “교만”의 대가를 상쇄하기 위해 강제력으로 그들을 응징한다면 도대체 개만도 못한 놈들이라고 규정했던 이들과 뭐가 달라지는 걸까요. 혹시 그런 응징이 지금은 너무 심한 것 같아도 향후에는 사회 전체의 안녕과 미래를 위해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되나요.

    어쨌든 감독은 결론을 내립니다. 하지만 그 결론도 아직 다가 아니라는군요. 앞으로 두 번의 얘기가 더 남아있다고 합니다. 다음 이야기에서 감독, 아니 “그레이스”는 어떻게 할까요. 처음의 결론을 후회하고 그 결과를 속죄하기 위해 죄인의 심정으로 초야에 묻히게 될까요. 글쎄,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가끔 볼 수 있는 이야기 전개이지만 현실에서는 거의 그런 경우를 못 본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습니까. 모르긴 몰라도 아마 “그레이스”는 자신의 결정이 정당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자신에게 주어진 물리력을 다 동원해 새로운 공동체를 계획하고 인간을 개조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고 하지 않을까요. 이런 사례는 역사 속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것 같은데.

    그나저나 이렇게 떠드는 나 역시 개만도 못한 놈들 무리 속에 그 모습을 숨기고 있는 건 않을는지.
    이전 작품 <브레이킹 더 웨이브(Breaking the Waves)>에서 바보스러울 정도로 순종하는 “베스”와 <어둠 속의 댄서(Dancer in the Dark)>에서 헌신과 희생으로 삶을 정리하는 “셀마”를 통해 여성이 처해있는 현실을 아무 여과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던 라스 폰 트리에. 그런 내용으로 인해 감독은 많은 여성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번 영화에서도 여전히 여성인 “그레이스”는 남성인 “톰”과는 달리 견디기 힘든 시련과 고통을 너무 많이 겪게 됩니다. 하지만 이전의 “베스”나 “셀마”와는 달리 “그레이스”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됩니다. 물론 그 힘도 역시 특정한 남성에게서 물려받은 것 아니냐고 하시면 할 말 없습니다만. 어쨌든 그의 다음 영화 속에서 여성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전작 <어둠 속의 댄서(Dancer in the Dark)>에서 감독은, “They say it's the last song. They don't know us, you see. It's only the last song if we let it be. (그들은 이게 우리의 마지막 노래라고 떠들지. 하지만 걔네 들은 우리를 몰라, 그거 알지. 우리가 그냥 내버려두면 정말 마지막 노래가 되고 말 거야.)”라는 말로 끝을 맺습니다. 그리고 결코 마지막이 아닌 다시 시작하는 노래일지도 모를 이번 영화에서 뜬금없이 “개자식들의 마을”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멀지 않은 과거의 우리 모습을 비추어 지금의 우리에게 함께 고민해보자며 질문을 던지나 봅니다. 그의 질문을 받아들일 것인지, 그렇다면 해답은 어떻게 찾아 나갈지에 대해서는 감독이 영화 속에서 내린 결론이 어떠하든 간에 역시 관객 각자의 몫으로 남겨져 있을 것입니다.

    '길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승연과 누드 ...  (0) 2004.02.19
    가사 검열 ...  (0) 2003.12.18
    삼식인의 정가 관측 ...  (0) 2003.12.13
    송구영신 해야쥐~  (0) 2003.12.12
    [가사 검열] 애덜은 가라 ...  (0) 2003.07.31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