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극화]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이 별거더냐?
- 부제 : 도공해리지마환 (陶工海狸之魔環)
(해리포터와 악의 반지 Harry the Potter and the Ring of Devil)
2002.2.15.금요일
딴지 영진공 시나리오 작업실
아름다운 세상이 있었다. 함께 일하고 나누며 서로를 사랑하던 이들이 있어 그 세상은 점차 풍요로워 졌지만 시나브로 찾아 든 욕심은 기어코 그들을 갈라놓고야 말았다.
얼마 전까지 서로 아끼며 함께 나누던 이들은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손이 다른 사람도 아닌 친구의 피로 물들어 버린 것에 흠칫 놀랬지만 그렇다고 손길을 멈추지는 않았다. 어디에나 곡식과 과일이 가득하던 땅이 어느덧 부패한 시체와 함께 썩어가 더는 아무것도 나지 않을 지경이 되어서야 그들은 비로소 자신이 저지른 일을 후회하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삼삼오오 오래 전에 수확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잔치가 열리곤 했던 들판으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그 곳에서도 그들은 다시 하나가 될 수 없었으니, 누구에 의해 살육이 시작 되었는지를 따지다 기어코 일단 모든 걸 다 덮어두자는 쪽과 철저하게 책임을 묻자는 쪽의 두 편으로 나뉘고 말았던 것이다.
그 날 이후 그들은 편이 같은 무리끼리 모여 살면서 아예 영토를 나눠버렸고 서로를 원수로 삼아 지내기 시작하였다.
세월이 흐르고 또 흘러가는 동안 서로 갈린 두 편의 영토 사이에서 마치 중립지대처럼 버려진 있던 땅에 각자의 무리에서 어울리지 못하거나 잘못을 저지른 이들이 스스로 또는 쫓기듯 흘러 들어와 살게 되었다. 그렇게 모여 살게 된 이들은 스스로를 마굴(摩屈) 이라 부르게 되었고 자신들의 땅을 중원(中原, the Middle Earth)이라 하였다. 그리고 모든 걸 덮어버리자던 편의 땅을 선계(仙界), 끝까지 책임을 규명하자던 편의 땅을 마계(魔界)라 부르게 되었다.
그럭저럭 세 편으로 나뉘어 서로가 간섭하지 않고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뭐 하나 나지 않을 만큼 척박했던 중원 땅 이곳 저곳이 마굴들의 노력덕분에 곡식으로 차 오르게 되었다. 그러자 점차 일을 하지 않는 마굴이 생겨났고 그들 중에 일부는 예전에 동료였던 마굴을 부려먹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때쯤의 어느 날 홀연히 중원에 한 인물이 나타나 스스로를 선계의 전령이라 자처하면서 선계가 얼마나 멋진 세상인지 설파하고 모두 함께 그 세상으로 가자 하였다. 그리고 그에 따르면 마굴들은 원래 죄를 짊어지고 있기에 선계로 가고자 하면 철저히 속죄하고 가진 모든 걸 내어놓지 않으면 안 된다 하였다. 행복한 세상으로 인도한다는 그의 말에 이끌린 마굴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났고 중원의 많은 곡식들이 선계에 바쳐지게 되었다.
헌데, 중원의 다른 구석에선 그와 다른 새로운 움직임이 일기 시작하였다. 행복으로 가득하다는 선계의 모습은 허상일 뿐이며 선계에 바쳐지는 곡식을 차라리 중원 곳곳에서 굶고 있는 마굴에게 나누어 주자는 목소리가 생겨난 것이었다. 선계를 동경하는 이들은 그런 목소리에 대해 마계의 사주를 받은 것들이며 중원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하였고 거기에 대항해 실제 마계의 지원을 받아 맞받아치는 사태가 자주 벌어지면서 평온하던 중원은 어느덧 혼란 속에 빠져버리고야 말았다.
중원의 한 구석에 있는 작은 마을에도 혼란은 닥쳐와 마을의 마굴들이 정파(正派)와 사파(邪派)의 두 편으로 갈려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을 벌이자, 그 마을 시장 한 구석에서 도자기를 빚어 생활을 하던 젊은 부부가 어느 날 홀연히 마을의 마굴들 앞에 나섰다. 사실 그 둘은 몇 년 전만 해도 대적할 상대가 없을 정도로 상승무공의 고수였고 도술의 일인자였으나, 우연히 만나 서로를 사랑하게 되면서 모든 걸 버리고 작은 마을로 몸을 숨겼던 것이었다.
어마어마한 무공을 갖춘데다가 성품이 선한 이 둘은 주변의 마굴들을 때론 힘으로 때론 설득으로 제압하여 마을의 평화를 유지시킬 수 있었다. 그 모습에 반한 상당수 마굴들이 둘의 뒤를 따랐고 그 무리가 점점 커지자 자신들을 '호구와투(護救渦鬪)단'이라 이름 붙이며 더 강한 결속을 유지하였다. 이들의 힘이 알려지자 평화를 원하던 다른 마을의 마굴들이 찾아와 문제의 해결을 의뢰하는 일이 잦아지다 보니 점점 그들의 세력은 커져 갔고, 젊은 부부는 정의의 수호자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렇게 둘의 명성이 중원 땅 곳곳에 드높아지면서 점점 더 영웅으로 대접 받는 만큼 그들을 해꼬지하거나 꺾어보려는 시도도 차츰 늘어가는 것에 불안을 느낀 젊은 부부는, 그들의 갓난 아들 해리(海狸)를 비밀리에 외딴 마을에 사는 친척 비루보(悲漏洑)에게 맡길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기어코 중원 땅에서 제법 세력이 있다는 무리들이 연합하여 화산곡(火山谷)에서 호구와투단을 기습하였다. 적들의 공격에 맞서 사력을 다해 일곱 날 일곱 밤을 장렬히 싸우던 단원들은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해 결국 대부분이 산화했고 요행히 살아남은 몇 몇의 단원은 뿔뿔이 살길을 찾아 몸을 숨길 수 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서 가장 용맹하게 싸우던 두 영웅의 생사는 밝혀지지 않았고 이후 누구도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 날 이후 십 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생일잔치 준비를 하던 비루보의 집에 노년의 한 사내가 찾아왔다.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간달파(干達婆)라 밝힌 사내는 비루보에게 해리의 안부를 물었고 이어 충격적인 말을 이어 나갔다. 십년 전 화산곡 전투에서 간신히 살아 남은 단원들이 우여곡절 끝에 힘을 모아 호구와투단을 재건하였고 바로 자신이 현재 우두머리를 맡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얘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비루보에게 간달파는 해리를 내어달라 하였다. 호구와투단의 옛 영광을 재현하고 도탄에 빠진 마굴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두 영웅의 아들이며 남 다른 재능을 타고난 해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남기며 간달파가 홀연히 사라지자 생일잔치 내내 깊은 고민에 잠겼던 비루보는 마침내 결심을 하고 해리를 조용히 방으로 불렀다.
어린 나이의 해리가 받을 충격을 고려하여 비루보는 저간의 얘기는 하지 않고 그저 해리에게 길을 떠나라고만 하였다. 부모가 남긴 것이라며 작은 반지 하나를 달랑 손에 쥐어주고 무작정 곤돌(琨乭)에 있는 담불도어(潭不道於) 거사를 찾아가라는 삼촌의 말에 그날 밤으로 길을 떠나야만 했던 해리는 영문을 몰라 비루보 삼촌이 자신을 내 쫓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겨우 곤돌에 닿은 해리가 어렵사리 찾아 낸 담불도어 거사의 거처에는 하지만 해리 말고도 많은 아이들이 이미 당도해 있었다. 아직도 가슴 속에 전설처럼 남아있는 호구와투단의 재건 소식을 입 소문으로 전해 들은 방방곡곡의 마굴들이 그들의 어린 자식으로 하여금 담불도어 거사를 찾게 하였기 때문이었다. 이후 해리는 그 아이들과 어울려 거사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두 영웅의 아들이라는 출신성분과 뛰어난 재능을 바탕으로 점점 더 남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로 대접을 받게 되었다. 그런 해리의 곁에는 그간 사귄 두 친구가 -뛰어난 실력에 예쁘기까지 한 여자아이 허미온(許美穩)과 성실하고 우직한 론(論)- 해리의 말이라면 이상하리만치 순종적으로 따르며 언제나 함께 어울리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이 무공과 도술 수행에 여념이 없던 해리를 갑자기 담불도어 거사가 불렀다. 해리가 서둘러 거사의 방에 들어섰을 때, 그곳에선 거사와 함께 낯선 한 노인이 그를 맞았다. 자신의 이름을 간달파라 밝힌 그 노인은 해리에게 아주 충격적인 얘기를 전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십 년 전 화산곡 전투의 전말에 관한 것이었다.
그 날 호구와투단을 협공한 연합세력의 우두머리는 사우롱(邪又弄)이라는 인물로 그 사악함이 끝 간데 모를 정도이지만 무공의 수위는 두 영웅이 맞서기에도 벅찰 정도였다. 강력한 우두머리가 이끄는데다 그 수도 월등했던 연합세력에 맞서 두 영웅과 호구와투단은 실로 장렬한 저항을 하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전세는 불리해졌고, 결국 두 영웅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전투가 막바지에 다다른 어느 늦은 밤, 두 영웅은 함께 죽자는 결의로 폭약을 짊어지고 은밀히 사우롱의 숙소에 암습을 가하였었지만 그리 호락호락한 사우롱이 아니었다.
잠이 든 와중에 당한 기습에도 불구하고 치명상을 가까스로 면한 사우롱은 두 영웅과 혈투를 벌였고, 그 싸움은 날이 밝을 때까지 계속되어 결국 양 편의 목숨을 건 마지막 일전으로 전개되었다. 그렇게 맞붙은 싸움이 화산곡 전투의 마지막 밤이 깊도록 이어지면서 호구와투단의 생존자를 거의 찾아 볼 수 없게 되자 두 영웅은 마침내 막무가내로 사우롱에게 덤벼들어 그를 부둥켜 안은 뒤 몸에 감은 폭약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폭음과 함께 셋의 목숨은 사라져 간 것이다.
그런데, 이 때부터 전해오는 전설이 있었으니 사우롱이 죽을 때 그의 육신에서 빠져 나온 마기(魔氣)가 갈 곳을 찾지 못해 마침 잘려 나간 사우롱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로 스며들어갔으며, 누구라도 그 반지를 손가락에 끼우게 되면 엄청난 마기에 힘입어 중원을 차지할 힘을 얻게 되리라는 전설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지는 얼굴도 모르는 친부모의 기막힌 최후에 너무 놀라 굵은 눈물을 흘리던 해리의 눈가가 채 마르기도 전에 간달파는 더욱 충격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해리의 부모가 목숨을 바쳐 제거했다 믿었던 사우롱이 두 팔이 잘린 채 살아 남아 지난 십 년간 상처를 치료하며 절치부심 하다가 마침내 얼마 전에 더 강력한 무공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우롱은 온 중원에 사람을 풀어 바로 자신의 마기가 담긴 반지를 샅샅이 찾고 있다고도 하였다.
그러면서 간달파는 해리에게 혹시 비루보에게 뭔가를 받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 말에 해리가 품 속에 간직하고 있던 부모님의 유물이라는 반지를 내 보이자 간달파와 담불도어 거사는 소스라치게 놀라고야 말았다. 그것이 바로 사우롱의 마환(魔環)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마환을 처음 손에 넣은 이는 화산곡 전투에서 줄곧 두 영웅의 곁을 지키던 호비토(胡秘兎)족의 전사였는데, 사우롱과 두 영웅이 함께 폭사한 현장에서 찾은 그 반지를 영웅의 후손에게 전하기 위해 간직하고 있다가 우여곡절 끝에 비루보를 찾아와 반지를 전달하고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었다. 그리고 십 년의 세월이 지나서 그 마환이 해리의 손 안에서 모습을 나타내고야 말았으니, 간달파와 담불도어 거사가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마환을 확인한 뒤 눈을 지그시 감고 한 동안 침묵을 지키던 간달파가 문득 다시 입을 열었다. 그는 해리에게 해리라는 이름은 그저 신분을 감추기 위해 붙인 것 일 뿐 자랑스런 두 영웅의 후손의 본명은 바로 후로도(侯撈道)라 하였다. 그리고 이제 후로도라는 이름을 찾은 해리에게 함께 길을 떠나자 하였다.
십 년의 은둔에서 깨어나 바야흐로 중원 정복의 야욕을 펼치려는 사우롱을 막을 길은 그의 힘의 원천인 마환을 제거하는 방법 밖에 없으며, 그러기 위해선 사우롱의 마기가 반지에 스며들었던 화산곡으로 찾아가 그 곳에서 아직도 타오르는 화산 속에 던져 넣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거기까지 얘기를 마치고 간달파가 입을 닫자 세 사람 사이에선 긴 침묵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가겠습니다."
해리, 아니 후로도의 입이 열린 건 약 다섯식경이 흐른 후였다. 그렇게 결심을 밝히는 후로도의 모습은 마치 광채가 어린 듯 하였고, 그를 바라보는 간달파와 담불도어 거사의 눈빛은 경외로 가득 차 올랐다.
이윽고 아까 담불도어 거사의 부름에 응하던 모습에 비해 눈빛부터 완연히 달라진 후로도가 방문을 열고 나오자 낯선 모습의 건장한 사내 넷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인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존명(尊命)!"
그들은 바로 호구와투단의 단주를 그림자처럼 따르며 호위하는 호구와투 사대호법 (四大護法) 이었다. 검랑(劍狼), 도성(刀星), 부괴(斧傀), 궁귀(窮鬼)로 의 4인으로 이루어진 이들은 중원에 그 존재가 전설처럼 전해질 뿐 실체를 볼 수는 없었는데, 이제 후로도의 눈 앞에 그 모습을 나타내고야 만 것이었다. 하지만 후로도는 그들의 출현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 너무도 자연스럽고 태연한 몸짓으로 앞장서 발 걸음을 옮겨 길을 떠나기 시작하였다.
그런 그의 모습에 일순 당황했던 간달파와 4대호법은 정신을 차려 서둘러 후로도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중원을 구하겠다는 결의에 가득 찬 발걸음을 옮기는 그들을 놓칠세라 잰 걸음으로 따라붙은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론이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계수나무 뒤에 가냘픈 몸을 숨긴 채 길을 떠나는 후로도의 모습이 아주 조그맣게 멀어지며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다 기어코 눈가를 적시던 그녀의 이름은 허미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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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챘지?
그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과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를 적당히 섞어서 무협지의 틀에 부어 본 거지. 어때, 그럴 듯 하지.
근데 왜 그랬냐고? 그 이유를 설명하기 이전에 이 얘기 먼저 들어봐.
작년 여름에 본 우원이 우연히 다국적 학생들 (한국, 중국, 태국, 미국, 프랑스, 멕시코 등)과 어울려 학습을 했던 적이 있었쥐. 그러던 어느 날, 미국 애가 갑자기 이런 얘길 꺼내더군.
"니네
봤냐?... 와, 그거 진짜 끝내 주더라"
나머지 애들은 걔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영문을 몰라 서로 눈만 멀뚱거리며 쳐다보는데, 잠시 후 한 중국 애가 나를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지.
"야, 쟤 혹시 <와호장룡> 보고 저러는 거 아냐?"
"그래, 아마도 그런 듯싶다."
이런 장면들...
미국 녀석은 나름대로 동양 애들의 열광적 호응을 기대하며 얘길 꺼냈다가 아무 반응이 없자 너무 썰렁해 하며 초조함에 눈동자를 굴리다가 그나마 중국 애가 말을 꺼내자 다시 들뜨는 것 같았어.
"그래, 그거 말이야, 정말 환상적인 영화 아니냐, 응? 응?"
하지만, 우리들의 반응은 더 싸늘해 졌을 뿐이었지.
"그게 뭐, 맨날 보던 거랑 별로 다를 것도 없던데..."(중국 애)
"야, 그런 건 한국 비디오 가게 가면 오 백 개도 넘게 있어." (나)
"너네 뭔 소리 하고 있는 거니, 지금" (태국, 멕시코)
" … " (프랑스)
아, 그 미국 녀석, 얼굴이 허옇게 뜨고 말았지. 전혀 보지 못하던 신비로운 무술과 도술이 난무하는 영화에 감동 먹은 나머지 그 영화가 만들어진 동네에서 온 애들에게 자랑도 하고 함께 감흥을 나누려던 의도가 여지없이 물거품이 됐을 뿐 아니라 면박까지 당했으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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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이제 이런 얘기를 꺼낸 이유를 말해보자.
국내에서 최근 개봉하여 아주 많은 관객을 동원한 두 영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그리고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 흥행 성적으로 따지면 아주 성공한 영화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말이다, 이 영화에 대한 찬사가 너무 과분한 것 같지 않은가.
"전 세계 어린이들에 마법을 걸다", "영화 역사를 바꾼 10대 걸작 중 하나" 등은 마케팅을 위한 과장이 섞인 것이라 쳐도 "외국에서 잘 나가는 판타지, SF, 추리물 등 '펄프 장르'가 이곳에서는 유독 천시" 받는다며 "영화가 개봉되기 전까지 <반지의 제왕>의 [국내] 판매는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라며 두 영화가 마치 새로운 대중문화의 전도사나 되는 듯이 비약한다면 이는 너무 지나친 것 아닌가.
왜냐하면, 위에 언급한 두 영화는 등장인물이 파란 눈에 큰 코 달린 서양 친구들일 뿐 그저 쉽게 접할 수 있는 무협지의 이야기 구조와 별반 차이가 없을 뿐 아니라, 또한 기왕에 '펄프 장르'의 소외를 언급하려면 당연히 오래 전부터 우리 곁에 있었던 무협지도 그 소외 받는 대상에 포함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와호장룡>에 열광하던 미국 친구는 그간 서양인들의 가치관과 행동양식에 기초한 문화 상품만을 섭취하다 우연히 그로서는 아주 새로운 정서와 표현방식을 접했기에 그리 반응한 것이라 이해할 수 있지만, 기존의 서양동화에 동양적 정서가 적당히 섞인 위의 두 영화에 왜 우리가 그다지도 호들갑을 떨어야 하는가.
이는 마치 둘 다 한국에서 만든 품질이나 외양이 똑 같은 두 옷 중 굳이 외국 유명 브랜드가 찍힌 것 만을 고르느라 난리 치는 것과 같지 않은가.
어떻게든 영화를 팔아야만 하는 이들, 그리고 그들과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일부 언론이 설레발을 치는 바람에 얼떨결에 그 영화를 봤다 치자. 실제로는 억지로 잠을 참느라 고생했으면서도 정작 남들이 하도 좋다고 하는 바람에 재미없었다는 말도 못하고 혹시 자기가 수준이 떨어져서 그런 것 아닌가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걱정하지 마라. 위의 두 영화는 보는 사람에 따라 그 재미나 평가가 아주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는 영화이다.
그리고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경우에는 9. 11. 테러 이후 위축된 미국인 들이 뭔가 부담 없이 즐길 걸 찾던 심리가 다분히 분위기 상승에 일조했었고,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도 제대로 재미를 느끼려면 먼저 두꺼운 책 한 권 분량의 내용을 알고 있어야 하는 영화이다.
이제 호들갑은 그만두자. 정작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저급하다고 젖혀 놓으면서 그것을 세련되게 차용한 남의 상품에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 건 아무래도 우스꽝스럽다.
어차피 다양한 문화들이 섞여가고 있는 요즘의 추세를 볼 때 앞서 언급한 동과 서의 정서가 합쳐지는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그때마다 지금처럼 난리 부르스 출 수야 없지 않겠는가. "유장하고 완만한" 화면이나 "마법의 학교" 등이 서양인들에게는 새로울지 몰라도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것들 아닌가.
그리고 한가지 만 더, 우리 사회에 "판타지는 여전히 낯선 장르"라고들 하는데 그 이유가 뭘까. 그건 바로 우리 사회 자체가 높은 공력의 판타지로 가득 차 있어서 굳이 영화나 소설을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아직 용이 되지도 않은 사람이 쌀나라 米國에 가서는, 뒤뚱거리는 오리는 빼고 자기하고만 놀자고 사정하다가 '악의 축'과 한 땅에 사는 사람들이 반발하자 바로 오리발 내미는 변신술.
아무 것도 안 먹어서 배를 째도 나올 게 없다던 사람의 배를 진짜 갈라보니 물경 이천만 원이 넘는 돈이 나오는 마법.
오로지 나라의 부를 위해 힘쓴다고 말하던 근엄한 얼굴 아래로 재빨리 손을 움직여 눈치 못 채게 바다 속 보물을 아도 치는 초식.
언젠가는 누구보다 과격하게 세상을 뒤엎어야 된다고 입에 거품 물다가 한 순간에 모습을 바꿔 가진 자의 이익을 지키느라 정년을 늘리고 통합을 유예하고 검은 돈 정체 감추기 등에 누구보다 앞장 서 방방 뜨는 후안무치술.
나는 안 그런다고 모두들 얘기하는데 회장이든 줄반장이든 선거만 되면 기가 막히게 그 동네 출신을 분류해 내는 신묘한 식별력.
평소엔 고문의 배후라며 죽일 놈이라고 욕하다가도 일정 기간만 되면 다 잊어 먹고 자신의 의사를 대신 할 사람으로 밀어주는 선택적 기억상실증.
예전에 지가 싸 놓은 배설물을 처리하지 못해 할 수 없이 다른 이가 치우는 과정에서 어쩌다 냄새라도 날라치면 득달같이 덤벼들어 배설물 발생의 책임까지 뒤집어 씌우느라 법석 떠는 엎어 씌우기 수법.
카메라만 비추면 비장한 얼굴로 속죄하며 다 책임 지겠노라 해놓고 다음 날엔 제 집 안방에서 고소를 머금고 앉아 있을 수 있는 공소시효 활용술.
이제까지 내내 줄기차게 자기 집단의 이익만 챙기면서도 언제나 민족정기와 민주주의 수호의 선구자라고 끝까지 우기면서 믿도록 만들어 버리는 몽환술.
이런 도술과 초식의 고수들을 마구 질타하다가도 정작 자기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즉시 적극적으로 감싸 안는 선별적 도덕 불감술.
봐라, 이보다 더 환상적인 판타지물이 어디 있겠나. 이러니 우리 사회에서 판타지는 아직 낯선 게 아니라 우리가 너무 높은 수준에 익숙해 있어 여타 소설이나 영화는 우습게 보이는 지라 잘 안 팔리는 거다.
그렇담 이 끝을 알 수 없는 내공절정의 판타지들을 이겨낼 방법이 없냐? 본 우원이 끝으로 하나 알켜주마. 자, 이제 단련하자꾸나.
"여러분, 여러어~부운~ 모두 고수 되세요... 더 이상 위의 수법들에 당하지 않게, 꼬옥요"
딴지 영진공
시나리오 작업실장 이규훈
(kyuhoon@hanimail.com)